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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문화

Great Expectations


얼마전부터 머리속에 자꾸 맴돌아 많이 듣고 있는 노래가 있다.


Mono의 "Life in mono"


일하면서도 듣고, 차에서도 듣고..


특히 차에서는 환경 신경 안쓰고 음악을 충분히 크게 들을 수 있으니 더 자주 듣는다.


차에서 크게 듣는 Life in mono의 감성은, BVSC의 Veinte anos를 한참 차에서 많이 듣던 때의 그런 감성.




그리고 Life in mono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영화.


이단 호크, 기네스 펠트로의 영화 "위대한 유산".




무려 1998년 영화다보니 내용은 거의 기억도 나질 않고, "재밌게 봤다"는 것만 기억나는 수준의 영화.

- 물론 '그 유명한' 분수대 키스신은 기억나지만 -


다시 한번 볼까 하는 마음에 방금 다시 봤는데..


철 들기 전에 본 "위대한 유산"도 이렇게 이입할 수 있었을까.


요즘 사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글쓰기와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인공이 그림을 그린다는 점도 매우 이입할 수 있는 요소였고





전혀 기억도 못하고 생각도 못한 마지막 내용이 담은 반전,


그리고 '사람을 보는 눈'에 대해 많아지는 생각들.


'진짜 내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이 신이 아니기에 가진 한계.


속이고, 속으며,


상처주고, 상처받고,


깨진 심장(broken heart)에 남은 상처로 평생 아파하는 할머니가, 손녀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르친 것들로 인해, 손녀는 또 다른 이의 심장에 못을 박고..


각자의 깊은 진심이 타인 또는 상황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에 빠져버리는 인연의 안타까움.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사람은 다 같은 것 같기도 한데.. '온전한 진심'이 상황에 묶이면서 '제한적 진심'으로밖에 될 수 없는 구조적 안타까움.


성선설 성악설로 귀결되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하면서.. 아아 머리가 아프구나.





.. 그래도 Ray Donovan이었다면 이렇게 철저히 속진 않았을 것 같다는 이상한 마무리로 글을 맺으며,


레이 도노번 시즌 2 에피 4를 시청하며 이 싱숭생숭한 기분을 캄다운해야겠다는.


완전 개인적 일기가 되어버린 새벽의 포스팅을 마감함.


(이래서 글은 새벽에 쓰지 말라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