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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쿠킹과 음식

'추억의 옛날식 순두부'와 '뜨는 왕돈까스'에 대한 단상



나에겐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순두부집이 하나 있다.


절대적으로 객관적으로 봤을때도 꽤 맛있는 집이지만,

어린 시절의 많은 기억이 머물러있는 곳이기에 더욱 좋아하는 집이다.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살던 그 동네, '남산동'에 있는 작은 순두부집이다.

당시엔 남산 순환로 언저리에 많지 않았던 몇개의 기사식당 중 하나였다 (지금 원조라고 걸린 집들 보면 얼마나 우스운지..)

상차림도 위와 같이 간단한데 장사가 정말 잘되던 집이었다.

이유는.. 맛있으니까.









당시 어머니가 회사를 다니셨기 때문에, 초등학생인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와 먹을 밥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집근처 식당 몇개에 '우리 애가 오면 시키는 음식을 좀 주세요^^ 매월 말에 다 결제해드리겠습니다.'라고

일종의 자매 결연을 미리 맺어두었고, 그 중 하나가 이 기사식당이었다.


가끔 밥을 먹으러 간 노란 교복의 '초등학생 나'는,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 앉아있는 택시기사 유니폼의 아저씨들, 그리고 항상 가게 구석 한곳에서 계란후라이를 굽고 계시던 아주머니를 기억한다.

물론 그들은 웬 초등학생 꼬마아이가 혼자 기사식당에 밥먹으러 온게 더 신기했을 것이다.

여튼 나는 저 계란후라이 하나를 봐도 그때 생각이 항상 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옛날식 순두부'


정말 서울에선 맛보기 어려운 진귀한 맛.

일반적인 매운 순두부찌게에 비해선 오히려 '맑은 지리' 같은 느낌이지만..

살짝 식초의 새콤한 맛도 나고, 참기름의 고소한 맛도 나고, 그 위에 김가루와 고추가루 다데기가 섞여내는 그 맛.

진짜 unique하다.

추억도 추억이지만 가끔 이 맛이 유독 땡길때가 있다.


가끔 가서 한그릇 뚝딱하고, 차에 실어 어머니에게 포장도 해다드리면..

그때 당시 생각도 못했던 '성장해버린 나'에 대한 묘한 느낌이 들때도 있고..









하여튼 이 순두부는, 마치 하동관 곰탕 매니아층에게, 할아버지-아빠-아들의 3대가 동시에 찾아가 먹는 그런..

향수를 동반한...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 같은 맛인데..


언제부터인가 이 집이 '남산의 유명한 왕돈까스집'으로 티비에 소개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간판도 원조 왕돈까스집이 된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집이 그 근방에선 가장 최초에 생긴 집이긴 하니까..


그런데 얼마전에 이곳을 찾았더니,

근래에 또 티비에 소개가 되면서, 아예 서울 곳곳에서 찾아와 '줄서서 돈까스 먹는집'으로 바뀌어버렸다.

허허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생각하며 들어가 순두부를 시켰다.

나오는 길에 포장도 해와야지 하며..


여기서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주말에 돈까스를 먹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주말에는 아예 순두부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

나도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써 '수요의 법칙에 의한 경제논리'로 그럴 수도 있다 생각은 하지만,

추억이 자본에 밀려나는 것을 바라보는듯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끔 외근 중에 순두부를 사먹고 시간이 좀 중간에 뜨는 날이면,

이렇게 카메라 하나 들고 남산공원도 찾곤 했다.


이동네 살던 때엔 주말마다 카메라 들고 남산공원을 올라도,

희한하게도 매주 다른 사진을 건졌었다..

어떨때는 가을의 노란 은행으로 가득찬 공원.. 어떨때는 거미줄에 걸린 개미..










어느 순두부를 사먹은 날 찍어둔 사진이 이런 글로 쓰일 줄은 나도 몰랐다.

마침 이날 찍은 마지막 사진이 단풍이라..


뭔가 좋은 것이 바뀌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참 슬플 일이다..


여튼.. 

그래도 그집 사장님.. 순두부로 흥하신 분인데.. 잊지 않으셨으면..^^